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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모두를 하나로 만든 옷, 두루마기 이야기

by 똘똘이22 2026. 7. 27.

한복 하면 저고리와 치마, 바지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외출할 때 겉에 걸치는 옷인 두루마기도 한복의 중요한 한 축입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길이에 옆트임이 없이 온몸을 감싸는 형태가 특징인 두루마기는, 이름 그대로 '두루 막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고구려에서 시작된 오랜 원류

두루마기의 뿌리는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무용총 벽화의 '무용도'에 그려진 포(袍)가 오늘날 두루마기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집니다. 삼국시대의 포는 저고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밑단이 훨씬 길어 한눈에 구분이 됐습니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치며 백저포(白紵袍) 형태로 발전했고, 조선 초기에는 직령포(直領袍)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가, 후기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두루마기의 모습으로 정착했습니다.

몽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고구려 이래 이어져 온 우리 고유의 포제(袍制)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일반적입니다.

신분의 벽을 허문 옷

두루마기

조선시대에는 외출할 때 반드시 포(袍)를 겉옷으로 갖춰 입어야 했는데, 신분과 격식에 따라 입을 수 있는 포의 종류가 저마다 달랐습니다. 그러다 1895년 을미개혁 당시 고종이 양반과 평민 모두에게 두루마기를 입도록 하면서, 두루마기는 신분의 구분 없이 누구나 입는 '평등한 옷'이 되었습니다. 옆트임이나 넓은 소매 없이 만들 수 있어 옷감을 아낄 수 있었다는 점도, 복식 규제를 넘어 널리 보급되는 데 한몫했습니다.

같은 개혁 시기에는 흰 두루마기 대신 검은 두루마기를 장려하기도 했는데, 흰옷은 자주 세탁해야 해서 물을 낭비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계절 따라 달라지는 두루마기

두루마기는 계절에 맞춰 종류를 달리해 입었습니다. 봄과 가을에는 겹으로 지은 겹두루마기를, 더운 여름에는 홑겹으로 지어 시원한 홑두루마기를, 추운 겨울에는 안에 솜을 넣어 지은 솜두루마기를 입었습니다. 옷감도 계절마다 달랐는데, 겨울용으로는 명주나 모직, 무명, 옥양목 등을 주로 썼고 봄가을용으로는 명주와 항라, 옥양목을, 여름용으로는 시원한 모시를 사용했습니다. 만드는 재료에 따라 모시두루마기, 광목두루마기, 비단두루마기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색깔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조선 말에는 대부분 검정색과 흰색 두루마기를 입었지만,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회색과 고동색은 물론 분홍색, 군청색, 옥색, 자주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상의 두루마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두루마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두루마기를 짓는 과정에는 여러 부분이 함께 어우러집니다. 세로로 긴 네모난 천에 겨드랑이 아래로 삼각형 모양의 '무'를 앞판과 뒤판 양쪽에 덧대어 옆을 막고, 양팔이 들어가는 소매를 붙입니다. 소매 자투리 천으로는 '깃'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목 부분에 하얀 '동정'과 여며 묶는 '옷고름'을 답니다. 옆트임 없이 무로 옆을 막아주는 이 방식 덕분에 활동은 편해지고 옷감 손실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명절 옷, 까치두루마기

어린아이들이 설날에 입는 색동 두루마기인 까치두루마기(오방장두루마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동쪽은 파란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빨간색, 북쪽은 검은색, 중앙은 노란색으로 배치하는 오방색 사상에 바탕을 두고 지어졌으며, 저고리와 조끼 위에 덧입고 그 위에 전복을 걸치기도 했습니다. 예로부터 설빔으로 즐겨 입었고, 오늘날에는 돌잔치 복장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두루마기

여자두루마기

현대에는 결혼식이나 격식을 차린 자리에서는 저고리, 바지, 배자, 마고자 조합이 더 많이 선택되는 편이라 두루마기는 상대적으로 덜 쓰이는 편입니다. 디자인이 단색 위주로 단순하고 가격대가 높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반면 일상 패션에서는 오히려 활용도가 높습니다. 코트와 비슷한 실루엣이라 양복 위에 걸쳐도 잘 어울리고, 오버핏 코트 유행과 맞물려 넉넉한 품의 전통 방식 두루마기가 패션 아이템으로 다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마무리

두루마기는 단순한 겉옷이 아니라, 고구려 벽화 속 옷차림부터 근대 개혁기의 신분 평등 정책까지 담고 있는 옷입니다. 시대에 따라 형태와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지만, '두루 감싸는' 본질만큼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